2016년 6월 4일

대화 #1

우리는 한참이나 과거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제 15년이나 지나서 정말 가물가물한 기억들이었다.
사실 다시 그녀를 만나면서 나도 지난 추억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만나기 전엔 그녀가 좀 더 많은, 내가 기억하고 있지 않은 추억들을 꺼냈기 때문이었다.
나도 널 많이 생각했다고만 말하는 것보다는 그럴듯한 추억을 꺼내어 대화를 계속 이어가야, 초반의 어색함이 금방 잦아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예전 처럼 카드게임을 하듯, 대화를 시작하였다.
빙빙돌렸다가 블러핑도했다가, 돌직구도 날리고... 익숙한 방식으로 우리 추억을 익숙하게 소생시켰다.

그녀가 꺼낸 추억 소생술은, '소환 명령' 기술 같은 강력한 카드였다.

그날 난 홍콩에서 그녀에게 가는 비행기를 가격도 안보고 질러버렸다.


우리의 마음이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레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져가고
심장소리조차 귀여운 그녀의 심장에 가까워지자 좀 더 많은 이야기들이 머리에서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왔다.

우린 마치 죽은 슈퍼스타를 추모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푸는 듯한 태도로 예전의 기억들을 조금씩 끄집어 내었고...

살짝 눈웃음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는 내게 말했다.

"얘기하다보니, 오빠가 정말 날 사랑했구나."

-그럼, 그래서 헤어지고 얼마나 슬펐는데, 잊는데 2년 걸리더라구

수영장이 보이는 발코니에서 기대있는 그녀의 허리에 손을 감으며 나는 멋있는 척, 쿨한 척 하면서 말했다.

"에이 첫사랑이니까 그랬겠지. 그래서 그렇게 오래 못잊은거야."

-그런가? ㅎㅎ 그런것 같네...


그녀를 만나기 전에 내게 몇명의 여자가 있었다는 것을 그녀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그녀가 나의 진정한 첫사랑이었음을, 세뇌당한 듯 믿고 있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워 그녀의 작은 머리를 내게 돌리게 하고 강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렇게 1년 중 가장 뜨거운 치앙마이의 5월의 밤은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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